짧은호흡-1, 일반 단편선

<겹쳐진 세계> <츄잉>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SUFFER> <유빈과 건> <시네마 클럽>

기획의 변
살아있는 모든 개체는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호흡은 숨을 쉬는 각자의 행동일 수도 있지만,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함께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꼭 살아있는 것이어야만 우리가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요?

전시회의 다양한 작품들, 서랍장에 숨어있던 일기장, 여러 숨결이 쉬어가고 사라진 공간들처럼. 우리는 사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존재들과도 매 순간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짧은 호흡-1, 일반 단편선’ 섹션에서는 ‘인간과 다른 개체와의 호흡’에 초점을 두고 신중하게 영화를 선정했습니다.

각기 다른 사물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겹쳐진 세계>, 타인과의 공감과 얽힌 이해관계를 껌으로 표현한 <츄잉>, 전자레인지라는 예상치 못한 존재와의 소통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고 위로를 얻는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과거에 겪은 고통을 춤으로 극복하고 재 호흡을 위한 도약으로 삼는 <SUFFER>, 숲속에서 쌓아가는 소년들의 우정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중요함을 상기시키는 <유빈과 건>, 마지막으로 작은 영화관들이 점점 없어지는 현실 속에서, 그 공간을 사랑해서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간과 인간의 호흡에 대한 존재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시네마 클럽>까지, 총 6편의 단편으로 관객분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호흡’은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지만, 동시에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외호흡을 통해 체내에 축적된 이산화탄소나 노폐물과 같은 몸에 해로운 물질들을 제거하고, 내호흡을 통해 산소를 체내에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 몸의 주변부에 위치하던 것들은 돌고 돌아 몸속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번 부문의 영화들도 비슷하게, ‘인간’을 항상 보던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 주변부를 조망하고, 순환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우리를 바라봅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청년들이 만든 단편 영화들이 그 자체로 다른 개체가 되어 관객 여러분들이 새로운 호흡을 할 수 있는 시작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청년들의 호흡이, 각자의 호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함께하길 바라며. 

  • 1시놉시스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이 아크릴 구조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 2프로그램노트
    길가에 세워진 오토바이, 식당의 환기통, 학교에 있는 의자와 책상, 여름 내내 돌아가는 실외기.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은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필요한 순간이 지나면 버려지거나 잊힌다. <겹쳐진 세계>는 그런 사물들이 겹겹이 쌓여 새로운 세계로 창조되어 마치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듯 이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겹쳐진 세계>는 <사람이 사는 문(2015)>, <팝 업 리서치(2018)>, <플로팅 메모리즈(2021)>를 연출한 옥세영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옥세영 감독은 일상에서 소외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지나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사용해 인간의 삶, 감정들을 투영해왔다. <겹쳐진 세계>는 여러 개의 아크릴에 다양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입힌 후, 아크릴들을 정렬해 감독이 의도한 시선에 따라 잔상이 생기며 움직인다.
    우리는 <겹쳐진 세계>를 보며 전시회의 작품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영화 속 사물들이 구축한 세계 자체를 경험할 수도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던 사물들의 세계를 바라보다 보면 인간 군상 속에 있는 낯설지만 익숙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만일 <겹쳐진 세계> 세계 속 사물들이 우리를 응시한다면, 그들의 시선 속에서는 이방인인 우리가 영화가 끝나고 어떤 감정으로 삶의 호흡을 이어나갈지 기대된다. (오은성)
  • 1시놉시스
    타인들의 이야기를 껌으로 만들고 나눠 씹으며 맛보는 세계. 이야기의 자극적인 맛만을 욕망하던 주인공이 ‘진정한 공감의 소통방식’을 찾아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 2프로그램노트
    ‘껌을 씹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의미할까? 츄잉은 껌을 씹는다는 것은 멀리서 보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어느 음식을 맛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6분으로 구성된 박예나 감독의 츄잉은 트렌디한 음악과 독특한 애니메이션으로 ‘타인들의 이야기를 껌으로 만들고 나눠 씹으며 맛보는 세계’를 표현해낸다.

    인물들의 대화는 특정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타인과의 관계는 특별한 대사가 없어 되려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껌을 씹는다는 것이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 껌을 씹으며 새로운 누군가가 울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동시에 존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인물들의 행동이다.
    독특하면서도 단순히 껌을 씹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감정들. 타인을 이야기할 때의 우리의 입모양, 자신의 뒷이야기를 들었을 때 드는 감정을 끊임없는 행동으로 표현한다.

    말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이다. (유다희)
  • 1시놉시스
    우울한 날을 보내는 지은은 우연히 전자레인지의 소리를 듣게 된다.
  • 2프로그램노트
    언어는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표현 방식이 다르더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서로 공유하고 공감될 수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컴퓨터든, 전자레인지든 각자의 언어가 있다면. 

    영화의 시작, 화면에 컴퓨터의 언어인 0과 1이 나열되다가 한글로 변환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은 ‘지은’은 방 안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다 지쳐 연재 중단 공지를 올린 뒤 빵을 데워 먹는데, 전자레인지가 마치 말을 건네듯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최초의 교감은 뜻밖의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작품의 제목인 마이크로웨이브는 ‘전자파’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말하자면 전자레인지의 ‘언어’다. 외로움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매개로 서로 소통이 불가능한 두 존재의 내면이 통하는 멋진 순간, 언어는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지은은 특정한 누군가이기보다는 결국 심적으로 고립된 우리 모두의 모습과도 같다. 무생물인 전자레인지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존재가 줄 수 있는 위로와 감정을 가슴 깊이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최보윤)
  • 1시놉시스
    2019년 1월, 생각지도 못한 병이 찾아왔다. 마비된 다리가 자유를 되찾던 순간을,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고백한다.
  • 2프로그램노트
    두려움은 물 밀려오듯 몰려와, 끊임없는 고통을 동반한다.
    검은 화면 속 누군가의 이명이 들린다. 놀라서일까, 고통스러워서일까.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고통, 눈을 감으면 더욱 생생히 기억나는 그 기억. 자신의 고통이 마침내 자신을 지배해버리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통의 고백 속에서 몸부림치다가도 기억하는 그 고통을 춤으로 표현한 <SUFFER>.

    우리는 고통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을까? 전반적으로 낮은 밝기와 보통의 우리가 두려워할 때 느낄 수 있는 배경음으로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피부의 표면과도 같은 사진 속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들린다. 그와 동시에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을 억지로라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좌절한다.

    서가연 감독님이 겪었던 자신의 고통들을 풀어낸 <SUFFER>는 ‘고통의 고백’이라는 문장 아래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는 이가 끊임없이 쓰러지고 또 일어나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움직이지 못할까 두려워했던 자신의 모습을 춤으로 표현하고,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서가연 감독의 자전적 고백이 담겨있다.

    다시는 걷지 못할지도 못한다는 두려움에 잠식된 고통이지만, 이 고통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이다. 보통의 우리들은 고통은 곧 아픔이고, 아픈 기억은 잊고 살고자 한다. 아프더라도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SUFFER>는 마비된 다리에 억눌려있던 자유가 어느 순간 풀려 해방감을 느꼈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나아가기 위함을 전한다. (유다희)
  • 1시놉시스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 깊숙한 곳에 유빈과 건, 두 아이가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두 친구. 그들에게 건천은 최고의 집이자 놀이터이나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2프로그램노트
    제주도 빌라에서 엄마와 형과 셋이서 사는 '유빈'과 메마른 건천에 혼자 사는 '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유빈과 건이 놀고 있는 숲속 깊숙이 위치한 형형색색의 천이 이어져 샤머니즘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은 마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옛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유빈과 건에게 이곳은 상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이며 어린 소년들의 추억을 쌓아 올린 방벽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며 공동체는 점점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중심이 된 현실 세계는 재개발이라는 새롭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방벽을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유빈과 건>의 강지효 감독은 실제 제주도 출신이며 2016년 고등학생인 그는 15년 동안 건천에 있는 동굴에 살다가 구조된 사람의 뉴스를 보게 되었고, '내가 늘 다니는 길이 누군가에겐 집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이어 과연 ‘그 사람은 정말 건천을 떠나고 싶었을까’에 대한 의문점이 들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도심 속을 거닐다 보면 가로수와 이름 모를 들꽃들을 당연하다 생각되어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이 많다. 기후 위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보다 높은 도심의 건물들로 그것들은 자연히 뒤 순위로 밀려나고 만다. 유빈과 건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같이 살기 위해 진정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해답이 되길 바란다. (오은성)
  • 1시놉시스
    언제부턴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 영화관을 전세 낸 것만 같은 기분도 잠시, 금세 외로운 마음으로 상영관을 나오곤 했다. 나는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스크린 앞에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 2프로그램노트
    기억에는 공간이 묻어난다. 공간은 움직이지 않는 고정의 무엇이지만 불변만은 아니다. 따라서 시간에 닳아 해지기도, 흐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간의 끝은 언제나 소멸일까. 이 물음에 대답이 되는 영화가 여기에 있다. 

    정윤지 감독의 <시네마 클럽>은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을 담았다. 담요 같은 따뜻함으로 시작된 광주극장의 기억, 그 기억을 안식처 삼아 독립예술극장을 찾는 희주. 관객과 묘한 동질감을 공유하는 동시에 일상의 순간들과는 동떨어진 일탈을 즐기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던 유영과 지도. <시네마 클럽>은 이외에도 씨네아트 리좀과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등의 독립예술영화관과 그 주변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따뜻하게 되짚어준다.

    ‘기억’의 기록. <시네마 클럽>이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직접적 경험이 여실히 녹아든 발화는 개인이 가지게 되는 공간의 의미에 설득력을 높이고,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의 경험적 사유의 쌓임이라는 추상성을 구체화시킨다. 즉, 없어지는 극장을 각기 다른 개인의 기억들이 쌓이는 군집으로서 묘사하며, 영화관이 다시금 실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기억들이 모였기 때문에 공간에는 의미가 생기게 되고, 이에 대한 재고의 여지는 영화를 보는 3자에게도 쥐여진다. 어찌 보면 공간이라는 구상적 매개에 기억이라는 추상적 요소가 이어진다는 것에 의문이 생기기도, 성격이 다른 개념들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개념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는 이 마음과 기억을 가지고 공간에 대해 어떠한 결실을 맺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을 빌려 예를 들자면, 그 독립예술영화관에 감으로써 우리는 누구하고든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낯설고 다르지만은 않다는것과 함께. <시네마 클럽>은 영화관을 찾는 그들과 우리에게 기억 속에 남은 공간은 어떤 의미로든 돌아갈 자리가 되어준다는 것을 시사하며, 영화관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따뜻한 쉼표가 되어준다.(윤지현)